큰 기대 안하고 봤다가 매우 많이 만족스러웠던 공연.
이형훈 / 방진의 / 신재범 / 임예진 캐스트로 관극
박보검 회차는 진작에 전석 매진. 역시 스타의 티켓파워란!
전체적인 느낌이 재미있고, 음악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 하고,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는 가족뮤지컬.
크지 않은 무대도 잘 활용했다는 느낌이었다.
전통적인 남녀의 꿈 캐릭터를 바꾸었다는 점도, 현실을 굳건히 지켜낸 여주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한 마디로 '잘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
1969년의 정분은 우주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꾼다. 절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우주선이 이미 달에 닿았지 않은가.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은 이제부터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는 정분의 대사는 중요하다.
불가능하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만 내 자의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하는,
어른들에게는 일종의 '자기위안'의 방패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1969년 정분의 대사는 그런 뜻이 아니었지만 2020년 남원의 결론은 그렇게 연결된다.
정분과 함께 서울로 가서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정분이를 달로 보내줄 꿈을 꾸던 남원에게
절체절명의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버지의 사고로 발이 묶인 정분과 함께 하며 평생을 수선쟁이로 남느냐,
아니면 정분을 혼자 남겨둔 채 국제복장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타느냐.
이 결정의 순간에 남원은 정분의 곁에 남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평생을 수선쟁이로 살아왔지만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그날 길을 달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한자락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걸 알기에 SUNNY가 된 정분은 니가 거기가 행복하면 거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제정신이 아닌 영감을 대하는 선희 할머니의 태도가 첫 씬부터 너무 담담하더라는.)
분명히 옷을 만들 수도 있는 직업인데 '수선쟁이'라는 이름의 한계에 갖혀
스스로의 옷을 만들 생각을 해 보지 못한 걸까?
그걸 깨닫고 정분에게 줄 우주비행사의 옷을 만든 순간 '70넘은 노인'의 '패션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실현된다.
(그런데 70대 초반의 설정을 너무 노인으로 맞춰 놓은 것은 아닌가 싶다.
남원은 몰라도 선희 할머니 패션은 좀 아니야... 80년대 시골 할머니 같잖아...)
취향대로 리폼을 해 놓은 옷들이 요즘의 레트로 열풍에 맞춰 날개돋힌 듯 다 팔려 나간 설정도 재미있었다.
꿈 대신 사랑을 선택한 남자와 그 남자를 또한 굳건희 지켜주는 여자의 평생의 사랑. 멋지다.
연신 깔깔대며 웃으면서 보다가 마지막엔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잠시 눈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나의 '영감'도 생각났다. (~~~^^)
평생 둘만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자식이 없는 설정일까?
원대한 꿈이든 소소한 꿈이든
인생의 어느 순간에 길이 달라지며 멀어진 꿈을 그리워하며 사는 어른들에게
그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었음을.
또한 꿈을 포기하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포기한 것이 아니며
대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라는 위안을 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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